제갈량이 죽은 뒤 제갈첨은 아버지의 작위인 무향후를 이어받아 장차 촉을 이끌 인재로 기대를 모았다. 『촉서』 「제갈량전」에 부록된 「제갈첨전」에 의하면 제갈첨은 글과 그림에 능하고 기억력이 좋았다고 한다. 제갈량을 좋아하는 촉인들에게 특히 기대받아 제갈첨의 재주와 총명함을 사랑했다고 전해진다.243년, 17살의 제갈첨은 공주에게 장가 들어 유선
의 부마가 되고 기도위(황제호위직)에 임명되었다. 244년에 우림중장랑으로 임명되고 다시 여러 번 승진해서 사성교위, 시중, 상서복야에 군사장군으로 봉해졌다. 기도위, 우림중랑장, 사성교위 모두 황제의 호위직으로 전통적으로 황제의 인척들이 맡았다. 당시 제갈첨은 황제의 사위였으므로 이런 관직을 맡는게 이상하지는 않다. '여러 번 승진하여' 같은 구절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순식간에 거쳐간 관직이 너무 많아서 생략된 것도 좀 있는 듯하다.261년, 제갈첨은 행도호 위장군으로 봉해져 같이 평상서사를 맡은 동궐
과 함께 상서의 일을 관장했다고 한다.제갈첨의 출세가도는 실로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불과 35세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군부 내에서 대장군 강유
다음가는 자리인 위장군을 꿰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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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47세에 낳은 아들 제갈첨
늦둥이인 탓에 아주어릴때 아버지 제갈량이 죽음
그러나 아버지는 황제의 상부이자
촉한 백성들이 모두 추앙하는 제갈량이라
17세가 되자사자 황제가 자기 딸과 결혼시킴
그리고 17세부터 35세까지 오로지 승진만함
뭘해도 아버지 후광으로 백성들에게 존경받음
태어나보니 아빠가 제갈량이라 바로 황제의 사위가 됨
그리고 인생 살면서 승진만 함